관가정의 맞수, 향단(香檀)

[문화유적]

- 관가정 쪽에서 바라다본 향단

동마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집은 관가정과 함께 마을 첫 진입에서 눈에 띄는 향단(香檀, 보물 제412호)일 것입니다.

향단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이언적이 병든 모친을 핑계로 벼슬을 사양하자 중종이 그를 경상감사로 임명하면서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지어준 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가 경상감사로 부임하였을 때인 1540년에 건립한 것이죠. 이언적에게는 아우 이언괄이 있었는데,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를 모시고 집안을 꾸려 형의 출사(出仕)를 도왔습니다. 이언적은 자신을 대신하여 모친을 지극히 모신 동생 이언괄에게 이 집을 선사하였습니다.


이언적은 독락당에서 5년간의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경상감사, 의정부 좌찬성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행복한 중년을 보냈습니다. 경상감사(경상도지사)라는 자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특별시장 정도의 직위였으니 대단한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경상감사로 재직하면서 이씨 종가에는 무첨당이라는 아름다운 별당을 지어주었고, 유일한 동생 이언괄을 위해서는 향단이라는 대저택을 선사했는데, 이는 독락당 낙향시절의 부끄러움과 동생에 대한 심리적 빚을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 향단 배치도

원래 향단은 99칸이었으나 화재로 불타고 현재는 51칸의 단층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면의 한층 낮은 곳에 동서로 길게 9칸의 행랑채가 있고, 그 후면에 행랑채와 병행시켜 같은 규모의 본채가 있습니다. 그 중앙과 좌우 양단을 각각 이어서 방으로 연결하여 전체 건물이 마치 '日'자를 옆으로 한 것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한 몸체로 이루어진 2개의 마당을 가진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안채에 딸린 안마당이고, 다른 하나는 안채 행랑에 딸린 노천부엌용 마당입니다. 밖에서 보면 아주 크고 화려한 건물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너무나 답답하고 폐쇄적인 가옥구조입니다.


- 향단 행랑채

한마디로 향단은 관가정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건축물입니다.

물봉 서쪽에 관가정이 있는데 반면 향단은 산등성이 동쪽을 차지했으며, 규모는 관가정의 두 배를 넘습니다. 향단보다 적어도 2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손씨 대종가' 관가정에 대응하여
이언적이 이씨 파종가를 이처럼 돌출적으로 부각시켜 지은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자신의 후원자였던 외삼촌 우재 손중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손씨들이 주도하는 고향마을에서 자신과 가문의 입지를 세우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향단의 외곽은 대단합니다. 위치도 위치지만, 일체의 장애물이 없이 건물 외관 전체를 드러냄으로써 마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면 지붕 위로 노출된 세 개의 삼각형 박공면은 사대부가로는 유례가 없는 형태입니다. 거의 보이지 않는 관가정의 박공면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향단 내부는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폐쇄적인 구조입니다. ⓒ 김환대


향단의 구성은 매우 복잡하게 모든 건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몸채에는 두 개의 마당이 있는데, 안마당은 사랑채와 안채를, 부엌마당은 안채와 안행랑을 나눕니다. 두 마당 사이엔 이 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안방이 자리를 잡아 집안의 모든 움직임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향단의 내부공간은 대단히 복잡하며 단절적입니다.

예를 들면, 며느리가 기거하는 건넌방은 부엌마당으로만 통하게 돼 있고, 안방 시어머니의 따가운 시선을 늘 받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있는 사랑방에 접근하려면 이중 삼중의 눈길을 피해야만 가능합니다. 이 집의 며느리는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하였고, 쥐죽은 듯이 건넌방에만 파묻혀 부엌의 하인들이나 지휘하고, 틈나면 안대청에 앉아 하늘이나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 집에 시집온 새댁들은 세 번 놀랐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웅장한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됐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을 것이고, 어렵게 들어선 안마당의 아늑한 분위기에 뿌듯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폐쇄되고 불편한 내부공간과 그 속에 묻혀 꼼짝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어쩌면 향단은 겉보기에만 화려한 감옥에 불과했을 지도 모릅니다.



- 향단의 후면

이언적이 어떤 이유로 이런 집을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가 한때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 머물었던 독락당과 계정에는 그처럼 정감있는 공간을 창조했으면서, 하나뿐인 동생집을 이처럼 폐쇄적으로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집을 만든 사람은 관가정과는 전혀 상반된 집을 만드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습니다. 관가정은 외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소박하지만, 내적으로는 개방적이면서 대단한 경관을 끌어들입니다. 반대로 향단은 외적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내적으로는 갑갑하고 폐쇄적입니다.

현재
향단은 내부로 통하는 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소수 방문객들은 향단의 아늑한 공간과 신비스러운 미로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들 하나 대부분 방문자들은 그 겉모습만 쳐다보다 돌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 글의 일부는 블로그 <예술로>에서 향단에 대한 글을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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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06:47 2009/11/16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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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상천 [2009/11/16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집이 비워져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집은 사람의 온기가 없으면 쉬 망가진다던데 공연히 걱정이 됩니다.

    향단의 배치도만 봐도 감히 추측하건데 이 폐쇄적인 대저택의 며느리의 삶은 꽤나 무미건조했을 듯 하네요.
    안쪽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합니다만...그냥 뭐 아쉽네요...^^

    • 하늘사랑 [2009/11/16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던데... 글쎄요?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어서...

  2. 내영아 [2009/11/17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요즘 시대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향단이라.. 이름은 너무 곱습니다

    • 하늘사랑 [2009/11/1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향단이란 이름은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의 손자였던 이언관의 호를 따서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어떤 사람은 집 마당에 오래 된 향나무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합니다.